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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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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06 12:09
현대시조의 면면을 살펴보기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425  

김 석 철
전 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

계간평
현대시조의 면면을 살펴보기

문학이란 상상적, 심미적 언어활동을 통해 인간의 체험, 생각, 느낌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따라서 문학은 소재를 상징적으로 재구성하고 해석 하며 표현함으로써 있을 법한 일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 은 감동과 깨달음을 주면서 감정과 정신을 순화시켜 주는 기능도 있다.  문학의 한 장르인 시조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형시다. 우리 민족의 사 상과 감정을 우리의 언어와 가락으로 표현하는 유일한 전통시이며 국민 시가인 것이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 선생은 1925년 ‘조선 국민문학으로서의 시조’라 는 논문에서 “시조는 시다. 조선인이 가진 시다.”라고 말했고, 월하 이태 극 선생은‘시조의 사적 연구’에서 현대시조의 정의를“현대인이 현대어로 현대인의 생활과 감정과 사상을 시조의 정형에 담아낸 작품”이라 했다. 이 두 분께서 내린 이 간단한 정의가 현대시조의 진면목을 다 보여준 말 이라고 사료되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편의 시조는 3장 6구 12음보의 율격체재를 갖 추고 있다. 따라서 시조는 그 형태 안에 언어, 율격과 음률, 비유, 상징, 의미, 문체 등 여러 요소를 내포하고 있고 이러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조화를 이룸으로써 한 편의 시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시조의 작품성을 결정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형식과 내용이기에 기본적으로 형식면에서는 반드시 율격을 갖추어야 하고, 내용면에서는 문학성(현대 성, 시조성)을 갖추어야만 한다. 그러면 지난 『시조문학』 봄호에 게재된 작품을 중심으로 편집 순서에 따라 시조에 나타난 면면을 살펴보기로 한다. 다만, 파격의 작품은 싣지 도 않지만 설령 게재가 되었더라도 계간평에서는 다루지 않는다는 걸 유 념해주시기 바란다.

 먼저 <시조문학 소시집>에 두 분의 작품이 각각 이십여 편씩 실려 있 는데 그 중에서 각기 한 편씩을 골라 보았다.
                         
겨우내 침묵한 산 안으로 간직해온       
분홍빛 사랑 노래 봄 햇살에 풀어놓고       
선연히 봄날을 태우고 사라지는 혼의 빛.                               
                - 김기옥,「진달래」 전문

 김기옥 시인의 이 단시조는 특히 시각적 이미지의 형상화가 곱게 펼쳐 지고 있다. 진달래가 ‘분홍빛 사랑 노래를 봄햇살에 풀어 놓고 선연히 봄 날을 태우고 사라지는 혼의 빛’이란다. 김 시인은 이 신작 특집에서 다양 한 소재를 다룬 작품을 고루 선보이고 있어 작품 경향을 살피는데 도움 을 주고 있다, ‘ 시작 노트’에서 “시조 고유의 틀 속에 자연의 신비, 세상의 어울림, 사상 순리까지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묘미와 그 매력에 끌 려 시조를 쓴다.”라고 피력하고 있다. 진달래는 우리나라 각처에서 자라는 식물로 이른 봄 잎보다 꽃이 먼 저 피어 우리의 눈길을 끈다. 일명 ‘참꽃’이라고도 불리며 한자어로는‘두견 화’라고 부르고 있다. 예전에는 약초로도 쓰였으나 근래에는 주로 관상용 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 꽃은 진달래술(두견주)을 담그기도 한다. 꽃말 을 찾아보니 역시 ‘사랑의 기쁨, 애틋한 사랑, 신념, 청렴, 절제’등의 예쁜 말들이다.

소박한 광목위에 그림을 그려 본다       
무지개 물감 풀어 그림붓 세워들고       
눈처럼 하얗게 웃던 그리움을 넣었다

정열의 빨간 장미 감싸던 그 하얀 꽃       
있는 듯 없는 듯이 언제나 함께 했지       
한 발짝 뒤에 서 있던 꽃 바라기 안개꽃                                 
              - 김미경, 「안개꽃을 그리며」 전문

 김미경 시인의 연시조 「안개꽃을 그리며」는 시조의 틀을 잘 지키고 있 으며 특히 언어의 구사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평소 시조 창작의 습성을 가늠해 보게 된다. 화자는 안개꽃의 진면목을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안개꽃’은 주로 꽃다발이나 꽃꽂이용으로 장미와 함께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하는데, 다른 꽃들을 화려하게 빛내주기 위해 주로 들러리 역할을 하는 꽃인 것이다. 안개꽃에 얽힌 전설이 있는 데 그 내용을 알고 나면 이 꽃의 숨은 아름다움을 더욱 실감할 것이다.
 
 다음 <신작 특집>에는 아홉 분이 여러 편씩의 신작을 선보이고 있었 는데 그 중에서 여섯 편을 골라 보았다.

떠난 고향 빈 하늘 높이 걸린 그림 속엔       
망각으로 검게 타 버린 내 어미 기억의 톨       
마지막 보시로 남은 속 씨 까만 까치밥.                                 
                - 김세환, 「감」 전문

 김세환 시인의 「감」은 단수지만 깊은 시상을 함유하고 있다. “빈 하 늘, 검게 타 버린, 보시, 까만 까치밥”등의 시어가 이 작품의 주제를 심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감나무의 까치밥은 우리 조상들의 아름다운 마음에 서 연유한다. 까치밥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편안해 지고 위안이 되는 아름다움이다. 화자는 떠나온 고향에 마지막 보시로 남은 속씨 까만 까 치밥 한 톨을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떠올리고 있다. 어머니! 헌신적 사 랑의 화신인 어머니! 어머니는 언제라도 우리의 가슴에 그리움으로 자리 하는 주인공이시다.

해자처럼 성곽처럼 이강이 휘어 들고       
계수나무 꽃향기가 온 산을 받들었다       
운무는 허리를 안고 눈을 감지 말라한다                                 
                - 김연동, 「계림 –복파산伏波山」 전문

 김연동 시인은 계림의 명승지를 중심으로한 연작시조를 몇 편 발표하 고 있다. 계림은 중국 남반부에 위치한 곳으로 자연풍광이 수려하여 중 국제일의 관광지로 이름난 지역이다. 부제는 ‘복파산伏波山’이다. 계림의 산은 해발고도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뾰족한 봉우리들이 매우 기이한 형 상을 보이고 있는 게 특이한데, 우리의 금강산 봉우리가 1만 2천 봉이라 지만 계림에는 3만 6천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하니 그 경관의 규모도 엄 청난 것이다. 특히 이 복파산을 오르게 되면 이강의 아름다움과 계림 시 내의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요즘엔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꽤 많이 찾는 명승지다.

딸에게 며느리로 전수한 음식 솜씨       
종갓집 대물림한 어머니의 손맛이다       
겨레의 토종음식이 우리 몸에 좋은 것을.                                 
                  - 송귀영, 「맛」 전문
 
 송귀영 시인의 「맛」은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깔끔한 단시조다. 맛있는 음식맛에 반하여 한 수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음식은 손 맛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식재료를 가지고 같은 방법으로 조리를 하더 라도 누가 조리를 하느냐에 따라 그 맛이 큰 차이를 보인다. 사실 음식은 집안 내력에 따라 전통을 이어가며 그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러기에 종 갓집 음식 솜씨는 그 집안의 대표적인 음식맛을 자랑한다. 사실 음식맛은 나라마다 다르고 고을마다 다르기 마련이지만 우리에게는 오르지 우 리 음식이 입맛에 꼭 맞는다. 신토불이가 빈말이 아니다.

위를 향해 더듬더듬 힘겹게 오르면서       
여럿이 힘을 모아 벽을 온통 휩싸더니       
초록색 고운 벽화를 저리 곱게 그렸구나.                                 
                - 양계향, 「담쟁이」 전문

 담쟁이는 우리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다. 주로 담장 바 닥에 심어 담벼락을 타고 오르게 하여 관상용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데, 그 번식력과 생명력이 더없이 끈질긴 식물이다. 쉬운 표현의 간략한 단수지만 시심이 더없이 맑고 순수함을 엿볼 수 있다.

만년설 정상에서 새해 소망 새겨본다       
대자연 앞에서의 순수한 내 시심詩心은       
가려진 운무에서도 일출의 힘 느끼네.

바라본 풍광 또한 설산 위에 일출이라     
감동은 숨이 막혀 말조차 잊었는데       
드넓은 설산 전경이 ‘아우라’로 물드네.

펼쳐진 병풍처럼 드넓은 바다처럼       
설산의 백골마디 밝히는 양기陽氣의 힘         
물物마다 염원을 올려 생명들을 키우네.

새하얀 설산 위에 우뚝 선 청송 하나       
우러러 하늘 향해 참 자아 괴고 앉아       
청아한 결기 떨치며 고고한 삶 누리네.                                   
      - 이정자, 「설산雪山에 서다」 전문

 이 시인은 시조의 정격운동에 누구보다도 앞장을 서고 있다. 시조지키기에 열성으로 공력을 들이고 있는 분이시다. 이「설산雪山에 서다」에서 는 알프스 만년설의 매력에서 크게 감동 받아 활력도 충전 받고 있음이 확연하다. 시인은 새하얀 설산의 정상에서 대자연의 위력과 신묘함에 경 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감동과 경건함의 표출이다. 특히 끝수에 보면 설산 위에 우뚝 선 청송의 고고함을 보면서 화자는 잠 시 삶과 인생을 반추해 보는 귀한 시간을 갖는다고 했으니 값진 교훈을 얻은 셈일 터.
 
내가 읽고 추천한 책 새겨 읽고 보내온 글       
자신을 성찰하고 주변도 돌아보며       
앞으로 변화된 삶을 다짐하는 서약서.                                 
                  - 정순량, 「독후감」 전문

 책 속에는 지혜가 담겨 있고 철학도 담겨 있다. 책이 사람을 만들어 주고 삶의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독후감은 책을 읽고 그 줄거리에 감상을 곁 들여 쓴 글이다. 화자는 삶의 지침서 격인 존 던롭이 저술한 『마지막까 지 잘 사는 법』을 읽으라고 추천한 것이라고 각주에서 밝히고 있다. 자신 을 성찰하고 주변도 돌아보며 앞으로 변화된 삶을 다짐하는 서약서 같은 책!    다음은 <단시조 특집>에 실린 작품들에서 고른 작품들이다.

밤이슬 지는 소리 발치에 매달린다       
지금껏 무얼 하며 예까지 왔느냐고       
한밤 내 쓰르라미 울음 내 귀를 쓸고 있다.                               
              - 김민정, 「산책 한 마디」 전문

 쓰르라미는 “쓰르람 쓰르람”하는 소리로 울며 주로 한 여름에 높은 가지에 앉아 우는 매미과의 곤충이다. 그러니 쓰르라미는 의성어에서 연 유된 명칭이다. 화자는 밤이슬 내리는 소리가 발치에 매달리는 깊은 밤 고요 속에서 쓰르라미 울음을 듣고 있다. 한밤 내 귓전에 울리는 쓰르라미 소리는 화자에게 깨우침의 매개체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쓸어라 쓸어라”의 의미를 내포한 것처럼 “지금껏 무얼 하며 예까지 왔느 냐”고 질책하는 소리로 듣고 있는 형국이다. 초장의 “밤이슬 지는 소리 발치에 매달린다”와 종장의 “한밤 내 쓰르라미 울음 내 귀를 쓸고 있다.” 는 공감각적 심상의 개성적인 표현이다.

가을비에 젖어 있는 세상의 모든 열매       
숨 가쁜 열기 식히고 하늘 명命을 듣는다       
준 대로 받드는 열매 그대로가 순교자다.   
                         
                - 김상선, 「가을 열매」 전문

 열매는 결실의 결정체다. 이 시조에서‘열매’가 상징하는 바는 그 의미 가 깊다. 한 톨의 씨앗이 열매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열매는 내적 성숙과 함께 농도 짙은 뜨거움을 안고 있는 것 이다. 가을은 흔히 결실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열매 맺어 부지런히 익어가는 계절이 가을이다. 그런 가운데 내리는 가을 비는 잠시 이런 숨 가쁜 시기의 열기를 식혀주며 하늘 명命을 듣게 한다. 열매가 익으면 한 때의 정해진 명命을 다하는 게 순리다. 처음 씨앗은 싹 을 틔우고 싹이 자라면서 잎과 꽃을 피우는가 하면 열매를 맺고, 열매가 익어서 또 다시 씨앗을 남기는 윤회의 이치다. 이는 하찮은 일 같지만 우 리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신비롭고도 위대한 자연의 순리가 아니 던가.

시부모 봉양하랴 오남매들 가르치랴       
고운 손 군살 돋고 어여쁜 발 부르텄다       
숱 많고 검던 머리 결, 백옥 같아 더 곱네.                               
                - 김영환, 「세월이 가도」 전문

 근래에 들어 우리의 삶이 윤택해지고 건강도 좋아져 부부가 함께 해로하는 가정이 늘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의 생활수준이 예전보다는 엄청 좋아진 것이다. 요즘은 핵가족시대가 됐지만 노인세대들의 젊었을 적엔 거의가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모시고 대가족이 함께 살았던 시절이 있었 다. 그 시절 특히 여성들은 유교적 관습의 굴레 속에서 어머니요 아내이 며 며느리로서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1인 3역의 역할을 감 내하며 살아야만 했었다. 이 작품에서 보면 아내는 어려운 살림에 시모 부 봉양하랴 오남매를 기르고 가르치랴, 애쓰며 고운 손에 군살이 돋고, 어여쁜 발은 부르트기도 했다고 술회하면서, 이제는 고된 세월은 흘러가 고 숱 많고 검던 머릿결조차 백발이 돼버렸지만 그 또한 오히려 백옥같이 고와서 보기 좋다고 자위하고 있다. 부부란 일생의 고락을 함께하는 동 반자요 반려자이다. 갖가지 어려움 속에 평생을 함께 해준 아내에게 실제 표현은 잘못하지만 항상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갖고 사는 게 이 세상 의 남편들이다. 작품에 나타난 화자의 아내 사랑이 아름답기만 하다.

몇 되나 나온다고 올벼를 심어 놓고       
선친은 물을 길어 퍼붓고 또 퍼붓고       
소출이 쭉정이 일망정 사랑 더욱 깊었다.                               
          - 김옥중, 「천둥지기」 전문
 
 장별 배행의 단시조가 더없이 가지런하고 간결한 형태를 보인다. 초장 과 중장의 종결은 설명형연결어미를 사용하여 점층적으로 시상을 전개하 였고, 종장에서는 설명형종결어미를 사용하여 시상을 마무리 하며 연결 성과 통일성을 꾀하고 있다. ‘천둥지기’는 주로 농촌에서 쓰는 말로 비가 와야만 모를 심을 수 있는 논을 이르는 말로 ‘천수답’이라고도 한다.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천둥지기가 많았지만 그동안 정부에서 농지정리와 수리시설을 건설하여 농사를 짓게 하다 보니 이제는 그런 용어조차 들어 보기 어렵게 되었다. 사실 우리 부모 세대 때는 거의 모든 농토가 천둥지 기였기 때문에 빗물이 부족할 떼는 일일이 사람이 직접 물을 길어다 부 어서 경작을 해야만 했다. 이젠 지난 일이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는 추억 이다. 화자의 선친에 대한 효심이 묻어난 작품이다. 그 당시 부모님들은 그렇게 힘들게 짓는 농사였기에 비록 보잘 것 없는 소출이었어도 농사에 대한 사랑만은 더욱 깊었던 것이다.

햇살을 희롱하는 하구언 금빛 물살       
낙동 호포 석양 일품 갈 갈아 바쁜 쪽배       
강마을 철새 한 무리 죽지 바람 접는다.                                       
                - 양원식, 「하구언 일우」 전문

 바다로부터 염수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강과 바다의 접경에 쌓 은 댐이 ‘하구언’이며 ‘하구둑’이라고도 일컫는다. 하구언은 하천의 정상 적인 기능유지와 강물 이용에도 기여하지만, 취수나 배를 이용한 수송에 필요한 수위를 유지할 수 있고 치수와 이수 측면의 복잡한 기능을 가지 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경제발전에 있어 중요한 하천 관리시설이다.  우리나라의 큰 하구언이 최초로 건설된 것은 1981년에 건설된 영산 강하구언이며, 그 뒤 낙동강하구언과 금강하구언 등이 건설되었다고 한 다. 화자가 석양 무렵 낙동강 하구언에서 조망하는 아름다움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서는 듯하다. 햇살에 번뜩이는 금빛 물살을 가르며 갈 길 바쁜 쪽배가 있고, 한 무리 철새는 죽지 바람을 접고 있는 것이다. 간결 한 단수지만 이미지는 선명하기만 하다.

둥~둥~ 하늘 한 복판을 울리는 황소울음       
소가 제 가죽으로 덩그러니 북을 메워       
축생보畜生報 그 모진 업을 하늘토록 울어라                               
                  - 허일, 「북鼓」 전문 

 허 시인의 단수 「북鼓」을 살펴보면 의성어로 시상을 열어 영탄으로 마무리하고 있으며 개성적인 표현이 풍부하고 메시지가 강렬한 작품이다. 북은 주로 소나, 말, 양 등의 가죽으로 만들어 쓰는 악기의 한 종류로 알 고 있다. 이런 축생들이 죽어서 가죽을 남긴 덕택이다. 북은 구조가 간 단하고 역사가 꽤 오래된 악기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여러 가지 독 특한 북을 만들어 악기로서 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적을 위협하여 물리칠 때, 또는 제사나 주술용으로, 일을 하거나 전쟁 때 신호나 정보의 도구 등 여러 모로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화자는 둥~둥~ 울리는 북소 리에서 황소울음을 떠올리고, 소가 제 가죽으로 덩그러니 북을 메워 축 생보畜生報, 그 모진 업을 하늘토록 울음 운다고 의미화하고 있다.

다음은 <봄 시조단>의 스물 댓 분의 작품들에서 열 편을 골라 보았다.

물이 불로 변환 곡진한 기도의 힘       
얼키설키 매듭 풀고 시름 타래 쪽을 찌고       
통짜로 주무르시는 어머니의 손이 뵌다

세상에 나오기 전 그늘을 걸러낸 힘       
밀봉된 채 뽀글뽀글 인내의 비등沸騰으로       
사리도 남기지 않은 어머니의 뼈가 뵌다.                               
            - 강혜윤, 「술」 전문

 강혜윤 시인의 연시조 「술」이다. 술은 곡식과 누룩을 섞고 비비고 주 물러서 묵히고 발효시킨 산물이다. 예전에는 흔히 집에서 어머니의 손으 로 직접 술을 빚는 광경을 볼 수가 있었다. 술은 물이 불로 변한 곡진한 기도의 힘이라니 화자의 시적 상상력이 참신하다. 첫수에서는 술을 빚는 모습, 둘째 수에서는 발효의 과정과 어머니의 수고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강 시인은 이 연시조와 함께 세 편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모두 소재 를 취택하여 묵히고 발효시키는 창작기량이 남다르다. 자기 목소리랄까 자기 스타일이 두드러지는 시인임을 짐작할 수가 있다.

감자 칼 끝에 닿는 딱딱한 검은 상처       
뾰족한 칼을 세워 둥글게 도려내다       
고행이 멍으로 뭉친 수행 길을 읽는다.

답답한 제 가슴을 얼마나 쳐댔기에       
감춰도 솟고 마는 상처로 틀어 안고
귀와 입 닫고 다문 채 겨울 강을 건너나.

손에 쥔 삶의 줄을 가끔씩 조여 가며       
졸리는 눈을 들어 찾아가는 봄의 햇살       
또 한 번 환생의 꿈을 지어가는 넋이여.                               
                  - 김영애, 「감자를 깎으며」 전문

 시조의 기초 단위는 음보다. 이 작품도 율독을 해보면 음보율의 묘미 를 느끼게 된다. 세 수가 공히 3장 6구 12음보의 틀을 갖추며 운율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율격은 3, 4음절을 기준으로 하는 4음보의 규칙적 인 반복과 연첩이다. 이 연시조는  순차적 구성으로 시행과 연의 짜임도 자연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화자는 감자의 ‘검은 상처’에서 “고행이 멍으 로 뭉친 수행 길을 읽는다”고 했다. 의인화의 표현수법이 의미전달에 기 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낡은 한옥 문 앞에 구절초가 피었네       
어설퍼 눈길 피한 그 집 앞을 밝히며       
어머나 지나는 발길 환호로 잡아두네.

우중충한 대문 앞 고운 자태 청초해       
한 번씩 드나들던 퀭한 노인 꽃 앞에       
사느라 잊었던 웃음 꽃빛으로 물드네.

인사 없던 이웃이 꽃을 두고 말 트네       
언제쯤 심었을까 어디에 사시냐고       
한 순간 남남들 모여 이웃으로 꽃피네.                                 
                - 김태자, 「담 밑의 구절초」 전문
 
‘구절초’는 가을을 대표하는 우리 꽃 중의 하나이다. 가을 하면 떠오르 는 코스모스는 우리 자생식물이 아니라 도입 일년초이지만, 구절초는 순수 우리 꽃이라고 한다. 코스모스가 분홍, 흰, 빨간색 외모로 우리를 유 혹한다면 구절초는 밝은 흰색과 연한 핑크색의 외모는 물론 내면에서 발 산하는 그윽한 향기로 모두를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따라서, 역시 홀로 서있는 것 보다는 무리지어 함께 자라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화자는 첫수에서 “지나는 발길 환호로 잡아두고”라고 했고, 둘째 수 에서 “잊었던 웃음 꽃빛으로 물드네”라고 했으며, 셋째 수에서는 “남남 들 모여 이웃으로 꽃 피네”라고 영탄하고 있다. 이젠 ‘반려식물’ 얘기까지 등장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사실 식물은 여러 면으로 우리 인간에게 이 로움을 주고 있는 고마운 존재다. 생태환경을 정성 들여 잘 가꿔 나가야 할 것이다.


미움도 녹이 슬어 생을 마친 철조망이       
포연이 묻은 채로 선율을 입고 나와       
검고 흰 불협화음을 수묵화로 치고 있다.                               
              - 김흥열, 「통일 피아노」 전문
 
 우리나라가 분단된 지 어언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철조망은 녹이 슬 어 수명을 다해가도 통일의 기미는 아직 멀기만 하다. 그 동안 통일에 관 하여서는 여러 가지 이벤트가 있어왔지만 여기서는“통일 피아노”다. 피아 노 건반의 흑백 색깔을 남북의 불협화음으로, 수묵화를 치는 건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음을 비유하고 있다. 특히 종장에서 “포연이 묻은 채로 선 율을 입고나와”의 시적 표현수법이 전방에서의 피아노 연주를 상기시키 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문종이를 투과하여 들어온 아늑한 빛       
적막한 오후 한 때 외로움도 따스해라       
즐거운 혼돈의 시간 삶을 잠시 놓았다                               
              - 남진원, 「3시의 햇빛」 전문

‘햇빛’은 광선을 의미하고 ‘햇볕’은 열(뜨거움)을 의미한다. 오후 3시의 햇빛은 광선의 각도가 엇비슷한 경우일 것이다. 배경은 어느 봄날 시골의 한지창집으로 설정된다. 문종이를 투과하여 들어온 아늑한 빛, 적막한 오후 한 때 외로움도 따스하여 스르르 몽환에 빠지고 있는 정경이다. “외 로움도 따스해라”, “즐거운 혼돈의 시간”, “삶을 잠시 놓았다.” 등의 표현 이 남다른 개성을 보이고 있다.

고운 노래 실개천의 맑은 눈빛 밟노라니       
소맬 잡는 금빛 햇살 따슨 미소 길을 막아       
연못 가 옥색 물 무늬 던져보는 내 마음.

아침나절 창포 꽃이 앉아 놀다 갔나 보다       
풋풋한 향냄새가 살 속 깊이 파고들면     
빈 손을 살고 있어도 가슴 가득 꽃 향기.

지난 밤 별빛들이 흘리고 간 사랑 얘기                 
아직도 꽃 빛 체온 가시지 않았는가       
아쉬워 파란 바람도 뒤돌아서 귀를 연다.                               
              - 문복선, 「연못 가에 앉아서」 전문
 
 세 수의 연시조가 시상의 연결성과 통일성을 갖추면서 시조의 보법 을 잘 지켜내고 있다. 형식과 내용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1인칭주관자시 점의 순수서정시조다. 화자의 따스한 눈빛과 정을 곁들인 품이 작품의 격 조를 한껏 높여 주고 있다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서정과 가락이 어우러져 창조적으로 형상화를 이루고 있는 지경이다. 이 작품에서 “맑은 눈빛”, “금빛 햇살”, “따슨 미 소”, “풋풋한 향냄새”, “가슴 가득 꽃향기”, “사랑 얘기”, “ 꽃빛 체온” 등 의 예쁜 표현들이 눈길을 끈다. 모두 순수하고, 곱고, 맑고, 따스하고, 아 름다운 언어들이다. 연못가에 앉아서 상념에 잠긴 선비의 모습이 눈에 어 린다. 
         
철벽을 떠나던 날 가뭇한 비알 따라
소문은 청보리밭 이랑 끝에 뉘었으나       
삭발에 물들어 버린 별빛 깊어 초롱했네

긴 여음 등에 지고 탱자 울 비켜가는         
뒤축에 고인 눈물 저승 곁에 넘쳐나고       
속울음 너무 깊어서 졸아드는 천년 헤네

어젠 듯 아쉬움이 눈에 선 동구 밖을       
이끼낀 돌장승이 맨발로 마중 오나       
일주문 바큰 추녀에 볼 비비는 촉수여.                               
          - 박영학 「종소리 -破戒」 전문

 시조의 제목은 자유시와 마찬가지로 작품의 주제나 내용이 일치하거 나 상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박 시인의 「종소리」는 상징성이 짙은 좋은 제목인 것이다. 제목은 작품의 얼굴로서 매우 중요한 인상을 주게 됨으로 우리는 좋은 제목 붙이기에 많은 고심을 할 수밖에 없다. 부제는 「破戒」로 되어 있는데 파계는 불교에서 계율을 깨트리는 것을 말한다. 즉 승가에 귀의하여 계와 율을 받은 자가 계법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것 을 말한다. 이 시조는 전체적으로 낯설게 하기 수법이 적용되어 상상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봉두난발 밤안개에 몸도 맘도 젖었는데       
그대 창에 어리는 뜨거운 두 그림자       
설미친 처용의 춤이 흰 파도로 일렁인다.                               
                - 박해성, 「실연」 전문
 
 실연의 절박함이 표출되어 있다. 초장의 “봉두난발 밤안개에 몸도 맘 도 젖었는데”는 화자 자신의 처지이며, 중장의 “그대 창에 어리는 뜨거운 두 그림자”는 실연의 직접적인 증거이고, 종장 “설미친 처용의 춤이 흰 파 도로 일렁인다.”는 실연의 충격을 비유적 수법으로 그리고 있다고 보겠 다. 그야말로 실연의 충격은 당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굉장한 위력의 상 처일 터. 

이렇게 환한 날엔 닫힌 문이 더 두렵다       
은둔의 광야에서 앞에 보는 네 등보다       
네 품속 가슴 연 아우성이 차라리 시원하다.                               
                  - 서순석, 「두려움」 전문

 표현하려는 생각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표현 하려는 바 를 대상에 빗대여 표현하고 있다. 원래 나타내려는 원관념을 보조관념을 통해 표현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이웃과도 서로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 고 있다. 헌데 서로 사이에 격의 없이 툭 터놓고 지내면 좋을 테지만 그 렇치 못한 관계도 많다. 소통이 아닌 불통이라면 결국 두려움만 있을 뿐 이다. 소통하는 관계가 그립다.

망월봉 달이 뜨면 이상향이 여기니라       
선각의 어르신이 달보고 점을 치던       
관음봉 찾는 너울엔 띠배 한 척 떠있다.
 
공양미 삼백 석에 청이 울음도 잠시       
인당수 물길 타던 매창의 시심 속에       
개망꽃 하얀 춤사위 쓰러질 듯 날아갈 듯

한 번의 만남을 꿈꾸다 햇귀로 달려가는       
백년도 잠시이고 울음도 잠시였다       
율도국 바다는 아직 시린 눈 바라기한다.                               
              - 양점숙, 「위도 가는 길에」 전문

 양 시인의 「위도 가는 길에」는 세 수 연형의 기행시조다. 위도는 부안 군 변산 앞 바다에 위치한 섬이다. 첫수에는 홍길동전에 나오는 이상향 인 율도국, 둘째 수는 심청전의 청이와 매창 얘기, 셋째 수는 1993년도 의 서해 페리호 침몰사건 등이 모티브가 되고 있다. 예부터 전해오는 전 설의 인물과 관련지어 창작한 이야기가 있는 작품이다. 세 수의 의미가 독립성을 띠면서도 전체적 내용이 집중되는 묘한 끌림이 있다. 시상을 이 끌어가는 힘이 만만치 않다.

 끝으로 <신인작가 특집>엔 열다섯 분의 신인들이 두 편씩의 작품 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 중에서 세 편을 골라본다.

산머리 흰 구름은 한나절을 뒹굴고     
풀꽃 위 호랑나비 줄무늬나 자랑하고       
노모는 텃밭에 앉아 쑥갓향기 들춘다                                 
              - 김윤숙,「한 - 閑」 전문

 한閑의 정경이 잘 그려지고 있다. 시상의 포착과 전개가 참신한 느낌을 주고 있다. 초장에선 “흰 구름” 중장에선 “호랑나비” 종장에선 “노모”가 핵심어로써,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소재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주제를 심화시키는 매력이 있다. 순수 우리말 시어를 고르고 다듬는 기량이 남다르다.

그대의 그리움이 지쳐서 기대서고       
부서진 기억들은 자리처럼 엉성한데       
길 없는 시린 바람이 이슬 젖어 눕는다.                               
          - 노용주, 「허름한 공원벤치」 전문

 노용주 시인의 단시조「허름한 공원벤치」가 제목처럼 허름한 공원 벤치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움은 지쳐서 기대서고, 기억들은 부서져 허름한 벤치처럼 엉성하다. 거기에 길 없는 시린 바람이 이슬 젖어 눕 기도 한다. 그야말로 공원에 놓인 허름한 벤치다. 말의 순서를 바꾸 어 조립해 보아도 의미가 상통한다. 이 단수에서는 취택한 소재와 시 어가 서로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시인은 나름 대로의 색깔 있는 시안을 지닌다. 똑같은 대상이더라도 보는 각도와 보는 위치에 따라서 그 대상이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크게 확대해서도 보고, 축소해 서도 본다. 시인의 눈은 색깔 있는 눈이며 창조적인 눈인 것이다.
 
반짝이는 잎새마다 살포시 내린 봄 눈       
부푼 가슴 어쩔거나 그리움이 타는 새벽
터지는 핏빛 울음에 일렁이는 파도야.                               
            - 이미숙, 「동백꽃」 전문
 
 이미숙 시인의「동백꽃」은 메시지의 전달이 강렬한 단수다. 초장의 동 백잎에 내린 봄눈에서는 인내의 자태를 읽을 수 있으며 중장의 부푼 가 슴 그리움이 타는 새벽에서는 강렬한 사랑의 표출이 보이고, 종장의 터 지는 핏빛 울음에 일렁이는 파도에서는 청춘의 정열이 나타나고 있는 것 이다. 동백꽃의 모양이나 형태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시인의 주관에서 모 양이나 형태를 의식적으로 변개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 지난 봄호 『시조문학』에 게재된 작품을 중심으로 시조의 면 면을 살펴보았다. 모두 300여 작품을 음미해 보면서 다시 여러 가지 생 각을 해보게 되었다. 우선 시조의 현대성과 시조성을 전제로 하여, 시어 의 참신성과 함축성, 경이적인 이미지의 형상화, 시상의 포착과 전개, 주 제의 심화, 형식과 내용의 조화, 시적인 표현 등이 머리를 들고 일어나, 결국 어느 것 하나 소홀이 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굳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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