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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중심을 세우는 남다른 기준-김명호시인의 작품세계-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0-06-06 12:07     조회 : 869    

세상의 중심을 세우는 남다른 기준
-김명호 시인의 작품세계-

                                                        정경은(문학박사)

김명호 시인의 시조를 읽고 있다.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시란 무엇일까 그리고
이 시인에게 시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는다.
저마다 생긴 모습이 다르듯이 시인들마다 시의 모습이 다르고 시인들에게 갖는 시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김명호 시인에게 시란 세상을 향한 타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매개로 하여 세상과 통하고, 자신과도 통화하는 타전의 방식, 여기에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시인의 모습을 본다.
시를 매개로 과거를 끌어내고, 미래를 보기도 하는 그에게 있어서 시조란 바로 끊임없이 무전을 받아주기를 원하는,
고립된 삶 속에서 세상을 향한 모르스 부호라는 생각이다.
김명호 시인의 시조는 공간마다 특성이 있다.
그는 여러 공간에 서있으며, 또 바라본다.
‘벼랑’과 ‘산’과 ‘황학동’을 중심으로 삶과 삶의 무게와 회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우물가’를 통해서는 세상의 중심에 대해 이야기 한다.
결국 이러한 공간의 변화와 주시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관심과 시선이 낮은 곳, 소외된 곳에 있음을 알게 된다.

1. 벼랑 끝, 삶
김명호 시인은 보통 수준의 삶보다 더 아래쪽을 바라본다.
세상의 삶이 마름모꼴이라면 마름모꼴의 제일 밑, 세모꼴이라면 세모의 가장 낮은 곳, 그곳에는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산다.
이들은 ‘달동네’에서 산다. 이름은 참 예쁘다.
달동네, 해동네, 꽃동네, 극장이나 까페의 이름으로도 어울릴 듯하다.
그러나 산업화의 초기에 가뭄과 궁핍으로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 유리하다가
서울의 근방에 모여든 이들이 사는 곳, 중심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근방에나 머뭇거리다가 밀려들 올라가 산의 꼭대기에 모여 살았던 곳이다.
달과 가장 가까운데 위치한다는 마치 빈민촌 같은 이곳을 사람들은 아름다운 이름 ‘달동네’라 불렀다.
맨 처음 이 이름을 붙인 이는 그들의 아픔을 알았을까.
알았기에 빛나는 해도 아닌, 해에게 빛을 받아서야 밝아진다는 달 같은 이름을 붙인 것일까.
김명호 시인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달동네를 바라본다.
그가 삶의 중심이라고 보는 것, 아니면 그가 설정한 세상의 중심은 도심지가 아닌 변두리이다.

영하의 달동네는 뒤가 천길 벼랑이다
바위를 뜯는 이들 손톱이 다 빠져서
전화를 걸어보지만 계속 통화중이다

골목이 일어서면 소갈병이 도진다
내일을 방에 둔 채 자물쇠를 걸었는데
그만 좀 전화를 받아요 불이 타고 있어요
- 달동네

위의 시조에서 시인은 암울하고 가난한 달동네 사람들의 심정을
을씨년스런 잿빛의 화폭에 무채색의 풍경화로 그렸다.
시인이 바라보는 달동네의 배경은 추운 겨울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인은 그 마음 안에 따뜻함을 가지고 가난한 이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달동네는 ‘영하’의 추운 날씨이다.
심리적인 추위와 함께 체감온도는 더 낮을 것이다.
달동네의 뒤는 위험한 천길 ‘벼랑’이다.
벼랑 끝에 선 삶들의 모습,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한 발만 내딛으면 저 밑으로 떨어지고 마는 그들의 삶이 천길 벼랑 끝에 몰려있다.
바위를 뜯는 이들의 손톱은 닳아 빠졌다.
살기 위해 벼랑을 오르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손톱만이 빠질 뿐이다.
손톱에서는 피가 흐르지만 부딪히는 것은 차디찬 바위 벼랑뿐이다.
결코 열리지 않는 문 같이, 결코 파 낼 수 없는 돌 같은 벼랑, 전화를 걸어보지만 계속 통화중이다.
통화중이라는 것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로 거는 전화이든지 간에, 삶과의 화해, 세상과의 화해, 인간들과의 화해 어느 쪽과도 소통이 되지 않는다.
골목이 벽처럼 일어선다. 막다른 골목, 막혀있어서 더 답답해진다.
소갈병(당뇨병)이 도진다. 하루 종일 물을 마셔도 목만 탈 뿐이다.
결코 축여지지 않는 갈증, 그들의 내일은 방에 갇혀있고 ‘자물쇠’를 걸어 놓았다.
내일이 없는 삶, 갇혀있는 미래, 이것이 산동네에 사는 이들의 삶이다.
가장 낮은 사람들은 가장 높은 곳에 산다. 정신이 가장 높은 곳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가장 높은 사람들은 산 아래 살며 그들의 정신은 가장 낮은 곳에 있다.
전화를 받으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지만 전화는 걸리지 않는다.
계속 통화중, 그들은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한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길고 장황하게 하는 것일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비천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자신들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높은 사람들끼리 뜻 모를 암호 같은 어려운 말을 써가며 이야기하고
그들끼리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삶, 시인은 그들의 삶을 마치 초현실주의 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이 같은 시적 구조와 어법을 통해 신분적으로 낮지만 거주공간은 高等高線에 위치한 아이러니를 부조리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부조리함이란 해결할 방법이 없는 운명이나 숙명이다.
소통되지 않는 삶을 넘어서 소통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
마지막 연에서 연결되지 않는 전화에 연결을 시도하는 통화자는
산동네의 사람들일지도, 아니면 이 세상을 향한 시인의 지속적인 타전일지도 모른다.
김명호 시인에게 생존은 절벽이나 늪에서 살아남기이다. 그는 암벽 밑을 바라다본다.

천야 만야 암벽 밑은
사신들의 아우성

도약은
붉디 붉은 이야기
산화래도

바다를 잡을 양이면
뛰어야만 합니다
- 가마우지

그 밑에 가마우지들이 있다. 마치 그들, 아니 우리들 같다.
저 밑에 있는 가마우지들은 우리가 숨기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
진작에 생각지 못한, 저 아래 내가 있다’(「곶감」)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자신, 아니면 숨기고 싶은 내가 저 밑에 있다.
살면서 지식과 안면과 가면 뒤에 숨기고 있었던,
타산적이고 이기적이고 비굴한 나의 모습들이 저 밑에 파묻혀 있다.
세상은 가파른 산이나 벼랑 같은 것이 천길만길이나 되는 듯 까마득하게 높거나 깊은 모양이다. 그 암벽 밑은 죽음의 신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다.
누구나 한 단계 높이 올라가고자 한다. 그러나 어렵다.
절벽에 핀 붉은 꽃은 잡을 수가 없다.
절벽 위로의 수직상승이 어려우면 바다를 향한 수평이동을 시도해본다.
그러나 그것도 나는 새에게는 어려운 뛰어야 얻는 것이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 세상은 방심하면 ‘늪’이 된다.
‘방심이 몸을 풀면 가늠 못할 늪인데’(「곡예사」)
아차하면 순간적으로 빠져들고 헤어 나오기 힘든 늪과 같은 삶,
이러한 삶을 헤쳐 가며 사는 사람들, 왜 그는 삶을 이렇게 보는 것일까.
삶에 대한 두려움은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한 치의 앞도 볼 수 없어 한 발 짝만 내딛으면 저 절벽 밑으로 떨어질 것 같은 심정으로 살아간다.
보통 ‘시민’은 ‘시인’이 아니라서 불안을 가지고 살아가며, 시인은 그것을 시로 표현할 뿐이다.
느끼지만 적당한 표현법을 찾지 못하는 시민과, 느낀 것을 적당한 표현법으로 표현하는 시인,
그리고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공감하는 시민,
시인과 독자의 거리, 이것이 시 쓰기와 시 읽기의 한 기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2. 산, 삶의 무게
산은 올라야하는 목표, 큰 인물과 같은 묵중함으로 상징된다.
그러나 김명호 시인에게 산은 일종의 ‘짐’ 혹은 부담감이다.
시인은 산과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산을 끌고 가기가 힘에 부치는 갑다
잠 없는 노인처럼 밤새 고시랑댄다
내 등에 짊어진 짐도 하릴 없이 젖는다
- 개울물

위의 시조에서 개울물은 산골짝을 따라 우르르 우르르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개울물은 산을 끌고 간다. 그러나 산보다 작기에 끌고 가기에 힘이 부친다.
힘든 개울물은 잠이 없는 노인처럼 밤새 고시랑댄다.
시인의 등에 짊어진 짐도 하릴 없이 젖는다. 모두들 자신의 짐을 진다.
개울물에 젖는 것일까. 비에 젖는 것일까. 개울물 소리에 젖는 것일까.
하릴 없이, 일없이 젖는다. 자기보다 큰 짐을 지고 가기에 힘이 든다.
어머니는 일 년 내 힘겨운 보릿고개를 끌고 고개를 넘어 다니며 새우젓을 팔고 다니셨다. 

일 년 내 / 보릿고개를 // 끌고 넘던 / 울 엄니 - 새우젓
어머니는 보릿고개를 ‘끌고’ 넘는다.
자식들을 위해서 새우젓보다도 더 짠 눈물과 땀을 흘리며 산을 넘었던 어머니에게는
생존 자체가 산과 같은 무거운 짐이었다.
당시 모든 어머니들의 삶이 그랬다. 남들에게는 풍경화가 되고,
시의 소재가 되지만 어머니에게는 짐이 된다.
그래서 삶은 보이지 않는 ‘고개’가 되고,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막막한 실물경제가 된다.
그렇기에 시인은 다음과 같은 시조에서
산을 사냥의 대상이 되기고 하고 소화되지 못한 공간으로 인식한다.

불이 산으로 번져 / 산 사냥을 합니다 - 산
설익은 산을 먹다 / 배탈이 낫나 부다 - 가을바람

가을 산은 단풍으로 화려하다.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산으로들 몰려간다. 아니 타오르는 붉은 산이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시인은 단풍이 산을 ‘사냥’한다고 본다.
거침없이 아래로 내려오는 단풍은 마치 산을 사냥하는 것 같다.
가을바람은 설익은 과일을 먹은 듯, 배탈이 나서 그렇게 차거운지,
시인에게 산은 관습적인 공간이 아니다.

산은 어떤 경우는 ‘시’가 되기도 한다.
김명호 시인은 시「어떤 시집」에서 ‘내가 들고 있는 이것은 산입니다’ 라며
어떤 시인의 시를 도저히 넘을 수없는 까마득한 산이라고 겸허하게 말한다.
산 같은 시인의 시, 넘어갈 수 없는 가파른 길과 까마득한 높이기도 하다다. 
‘남산’ 같은 김삿갓의 묘는 얽매임과 화의 덩어리이다.
시인은 천성이 방랑자이다.
묶인 영혼은 시를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
자유로운 영혼은 자유로운 삶과 육신을 소망한다.
시인은 시인 김삿갓의 묘를 바라보며 답답한 마음을 가진다.

말뚝을 박아 놓고
역마살을 묶었다

그래도 못 미더워 산 첩첩 둘러치니

안으로 쌓이는 화가
남산만 하더이다.
- 김삿갓 묘

김삿갓의 묘는 영월에 있다.
잊혀 가던 묘를 어느 향토 사학자가 찾아내어 복원하였다고 한다.
김삿갓의 정신은 ‘방랑’ 즉, 자유로움에 정체성이 있다.
그는 삿갓하나를 쓰고 지팡이 하나만을 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방랑하며,
가는 곳마다 이야기와 시를 남겼다.
그의 시가 가지고 있는 해학의 정신과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시마다 담겨 있다.
김명호 시인의 꿈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과 정신이 시인의 소망이 아닐까.
이러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던 김삿갓에게 현대의 묘는 불합리해 보인다.
‘말뚝’으로 그의 역마살을 묶어 놓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그것도 못 미더워 첩첩 산 속에다 그의 묘를 만들어 놓았나보다.
김삿갓의 묘를 만든 것은 어떻게 보면 김삿갓의 뜻과는 거리가 먼 지방자치제의 상술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진짜 김삿갓의 묘라면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인물들을 서로 자기 고장의 인물이라고 우기는 바람에 그들의 묘가 두 군데나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이렇듯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에 의해 마치 드라큘라가 말뚝에 박혀 죽었듯이,
그의 영혼은 말뚝이 박힌다.
사진으로 보는 김삿갓의 묘는 그리 크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남산’만하다고 한다.
김삿갓의 화가 쌓여서 남산만 하다는 시인의 자조적인 해석일 것이다.

3. 황학동과 청학동, 회귀의 공간
김명호 시인은 황학동이나 청학동 같은 전통적인 장소를 주된 공간으로 설정한다. 

놋화로에 한 보시기 햇빛을 담아놓고
거꾸로 가는 시간 입질을 기다리는,
나 가끔 황학동에 가서 할아버질 만난다.

한 점 흐트러짐 없는 꼿꼿한 앉음새로
왕골자리 고드랫돌 한 밤을 엮으시며
집안의 대소 사안을 다시리던 속앓이

내일에 내 강물도 꼬리를 접을 때 쯤
어쩌면 나는 한 뼘 황학동을 비집고서
진 고개 넘어가는 해나 바라보고 있을 터.
- 황학동

황학동은 골동품도 팔고, 오래된 중고품도 파는 벼룩시장이 서는 동네이다.
이 거리가 재개발로 사라져가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위의 시조에 의하면 시인은 황학동 거리에 앉아서 골동품을 파는 할아버지를 가끔 만나러 가는가 보다.
놋화로와 왕골자리는 지금은 흔하지 않은 물건들이다.
물건들이 팔리지 않은 듯 놋화로에는 햇빛만이 한 보시기 담겨져 있다.
빈 공간에는 밀려드는 것들이 있다.
‘가을이 나간 자리 철새들 밀물인데’ (「샘통」) 가을이 지나간 자리에는 철새들이 밀려든다.
철새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봄이 밀려들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과거의 물건과 과거의 인물, 회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형성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입질’을 기다린다. 무엇이 낚기기를 바라는 것일까.
물건을 살 사람일까. 혹은 강태공처럼 시간을 낚는 것일까.
할아버지의 외양적인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이 꼿꼿하게 앉아 있다.
길거리에 앉아 골동품을 팔고 있는 할아버지이지만 그에게서 살아온 날들을 발견한다.
왕골자리를 만들기 위해 고드랫돌(발이나 돗자리 따위를 엮을 때에 날을 감아 매어 늘어뜨리는 조그마한 돌)을 쉼 없이 움직였던 할아버지,
한밤을 새워 엮어서 시장에 내다 팔며 자식들을 키워내었던 그,
만만찮은 삶에 ‘속앓이’도 하면서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하였던 가장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모습은 흐트러짐이 없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강물’이라 생각한다.
강물이 꼬리를 접을 때, 즉 인생의 말미로 들어섰을 때,
그가 설 곳은 왕골자리도 아닌 ‘한 뼘’ 정도의 땅이면 충분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가 갔던 그 땅을 ‘비집고’ 앉아,
할아버지가 놋화로에 햇빛이나 가득 담고 있었듯이,
고개를 넘어가는 해나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그도 비가 오면 몸이 욱신거리는 나이가 왔다.
‘하늘이 울려는지 / 내 몸이 시끄럽다’ (「유월」)고 한다. 몸이 욱신거리는 것이 ‘시끄럽게’ 들린다.
강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듯이
가뭄이 되면 강의 바닥을 드러내듯이 그의 삶도 자연스럽게 마감될 것이다.
 위의 시조는 그때의 삶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리라.
김명호 시인도 그렇게 누렇게 바래어가는 왕골자리처럼 낡아 가지만
정신만은 ‘꼿꼿함’ 을 가지고 여분의 삶을 누릴 것이라 믿는다.
그의 왕골자리에는 여러 형식과 모양과 전통을 가진 ‘시조’가 빼곡히 놓여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오고 가는 사람들이 그의 앞에 앉아 쉼을 얻고 과거와 미래를 바라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황학동’과 ‘청학동’은 아직까지도 옛 것이 유지되고 있는 공간이다.
황학동이 물건을 볼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라면,
청학동은 볼 수 없는 것들이 가득 찬, 즉 정신과 사상을 우지하고 있는 정신적인 공간이다.
김명호 시인은 이곳에도 관심을 보인다.

지리산 골짜기서 새 소문이 들린다
끙끙 앓으면서도 선뜻 못 나선 예(禮)가 
몽양당 바위 틈에서 물방울로 솟는다는.

옹달샘 거울에서 비롯한 물줄기가
조금씩 몸을 보태 큰 강을 이루어서
마침내 바다로 나가 중심으로 뜨겠네.
- 청학동

지리산 골짜기에 있다는 청학동에서 새로운 소문이 들렸다.
청학동은 아직도 ‘인의예지’를 교육의 기본과 인간 정신의 근간으로 삼으며 현대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변해가고 있는 현대, 사라지고 있는 정신에 끙끙 앓으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예였다.
‘예’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무례함’이 자리하게 된 현재,
‘효’가 사라지고 불효가 가득한 시대, 시인은 어떤 소식을 들었는지 반가운 소식에 펜을 들었나 보다.
몽양당은 청학동의 청소년 예절학교이다.
잊혀졌던 ‘예’가 몽양당 바위틈에서 ‘물방울’로 솟는다.
지금은 작은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하찮은 물방울에 불과하지만
옹달샘이 되고 옹달샘의 물줄기는 ‘조금씩 몸을 보태어’ 큰 강을 이룰 것이다.
몸을 보태다 보면 점차 커지는 물줄기가 된다. 이윽고 강이 되고 바다로 나간다.
청학동에서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에 대한 배려도 예의도 모든 것이 이렇게 작은 것부터 시작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시인이 그 모든 것의 시작을 ‘청학동’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청학동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에 주목해 본다.
청학동은 가장 한국적인 것, 가장 한국적인 정신을 보유하며 지키려 애를 쓰는 공간이다.
시인은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근본을 ‘한국사상’ 혹은 ‘한국정신’으로 본다.
이것 중의 하나가 시조쓰기가 아닐까 싶다.
몇 개 되지 않는 운율을 지키며 몇 개 되지 않은 글자에 자연과 인간과 사회를 담아내는 한국적인 문학,
시조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시인이 있으므로 시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외래종에서 내어준 것들이 오래되었다.
그중에서도 아쉬운 것은 문자와 문학인 듯싶다.
김명호 시인이 뜻 모를 외래어가 넘쳐나는 한국에서 아름다운 한글을 도구로 하여
크나큰 한국문학의 바다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해 본다.

김명호 시인은 골목길에도 서있다.

바람이 활궁자를 쭉 당겨 펴놓고서
가로등을 촘촘 심어 달빛을 몰아낸 뒤

사랑의
달맞이 꽃도
속절없이 집니다
- 골목길

시인은 그 골목길의 끝에 서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주시하며 골목길보다 가로등보다 오래된 달맞이꽃이 너울거리던 그 시절을 불러온다.
활궁자 ‘弓’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시인은 위의 시조에서 이것을 쭉 펴놓았다라고 한다.
왜 직선으로 쭉 뻗어있다고 하지 않고 쭉 당겨 펴놓았다고 할까. 직선은 아닌듯하다.
약간 구불구불한 골목길일까.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예전길이다.
가로가 정비되지 않았던 옛날의 길들,
거기에는 연탄재가 쌓여있고 쓰레기가 돌아다니고,
골목골목에서는 개가 짖으며, 아이들은 나와서 팽이나 딱지를 가지고 놀던 곳,
연인들이 헤어지기 싫어 속삭이는 곳,
어머니가 공부하다 늦게 오는 딸을 기다리는 곳,
골목길은 수많은 이야기와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개발이 되면서 쭉쭉 뻗은 길이 된다.
저 모퉁이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는 즐거움도 없어진다.
신식 가로등은 달빛을 몰아낸다.
가로등이 꺼지면 밝은 달의 조명도를 감지할 수 있다.
가로등이 없으면 세상이 어두워질 것 같은데 그러지 않다. 갑자기 세상이 밝아진다.
강한 불빛에 의해 반사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은은한 빛의 즐거움과 밝음을 시인은 알 것이다.
달빛에 의지하여 걷는 골목길은 무섭기도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시인인 아닌 나는 표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시인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달
맞이꽃은 달빛을 받고 꽃을 피운다.
몰아낸 달빛에 달맞이꽃은 마치 사랑처럼 속절없이 지는 것일까.

4. 우물, 삶의 중심이란...
김명호 시인의 시조를 읽어가면서 김명호 시인은 말이 없는 사람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저 가만히 바라보거나 세상을 향한 무전신호를 보낼 뿐이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우물 옆에 서있다.
두레박을 던져 물을 퍼 올리다가 두레박의 줄을 가만 바라본다.
물을 끊임없이 퍼 올리는 우물이 가진 원형적인 상징은 여성적인 공간이다.
어느 한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수혜를 주는 어머니 같은 공간이다.
또한 우물은 공동의 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 소문이 무성한 곳, 빨래를 하거나 음식을 씻는 곳이다.

줄이 닳은 것은 땀에 절은 탓이다
덕분에 한발도 어렵사리 다스리고
태양은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한 생에 물을 길어 텃밭을 가꾸시다
이윽고 얹어둔 두레박에 묻은 때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아준다.
- 두레박 

시인은 두레박의 때 묻은 줄에 집중한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줄을 잡았을 것인가.
하도 오래되어 소금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민물을 퍼 올리는 두레박에 그들의 땀에서 베어나는 소금이 끼었다. 
심한 가뭄도 덕분에 어렵사리 다스리고
가뭄에 미안한 마음에 제대로 얼굴을 들지 못했던  태양은 그제서야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 물을 길어서 텃밭을 가꾸고 생을 가꾸었다.
아무도 세밀하게 보지 않았던 때,
이것이 ‘중심’을 잡는 무게 추 내지는 중심점이라는 사실,
때의 무게 때문에 흔드는 바람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세상의 중심을 잡는 것은 이렇게 하찮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듯 김명호 시인은 시조를 통해
 ‘손톱 밑의 때만도 못한 놈’이라는 자조적이거나 자학적인 명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였다.
모두가 같이 만들어가고 어느 무엇도 하찮은 것은 없다는,
소중한 시간과 공간과 존재 그리고 사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시인이
앞으로도 세상의 중심 같은 시를 써내기를 기대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시인의 작품세계, 다시 읽고 싶은 시조
Total 13 [ 날짜순 / 조회순 ]

13 연(蓮)바람           09-19 운영자
다시 읽고 싶은 시조 - 정순량 연蓮과 바람 정 완 영 옛날 우리 마을에서는 동구 밖에 연蓮밭 두고 너울너울 푸른 연잎을 바람결에 실어 두고 마치 그 눈부신 자손들 노니는 듯 지켜봤었다. 연蓮밭에 연잎이 실리면 연蓮이 들어왔다 하고 연蓮밭에 연蓮이 삭으면 연蓮이 떠나갔다 하며 세월도 인심의 영측盈仄도 연蓮밭으로 점쳤었다. 더러는 채반만하고 더러는 멍석만한 직지사 인경소리가 바람타고 날아와서 연蓮…

12 윤회輪廻 (정 재 열)           03-13 운영자
한휘준 ·아호: 설봉雪峰 ·시조문학 작가상, 시세계 작가상, 달가람문학상 ·시조문학 문우회 회원, 월하시조문학 동인, 인사동시인들 동인 ·중앙대 예술대학원 詩마루동인, 서정시마을 *淸士村시사랑 동인 ·한국시조시인협회 /도봉문인협회 ·창작시집 「사랑 그 아름다운 말」 윤회輪廻 정 재 열 허공에 턱을 괴고 한 생을 돌아본다 봄 햇살 가을 서리 하나같이 보시였네 이제는 내어줄 차례 소신…

11 이태극-산딸기           02-21 운영자
이근구 ·월간 모던포엠, 강원시조시인협회 고문 ·사)시조사랑시인협회 부이사장, 사)시조문학진흥회 자문위원 ·강원문인협회, 시조문학문우회 이사 ·시조집 「들꽃 동행」외 다수 ·수상 [한국시조문학상] 외 다수 산딸기 이 태 극 골짝 바위 서리에 빨가장이 여문 딸기 까마귀 먹게 두고 산이 좋아 사는 것을 아이들 종종쳐 뛰며 숲을 헤쳐 덤비네. 삼동을 견뎌 넘고 삼춘을 숨어살아 뙤약볕 이 …

10 성불사의 밤           02-21 운영자
정재호 ·동아일보 신춘문예당선(1962) ·시조집 「제3악장」, 「바람 속에 피는 꽃」 ·시집 「모과」, 「마당」, 「천치가 부르는 노래」 성불사의 밤 이은상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댕그렁 울릴 제면 더 울릴까 맘 졸이고 끊일 젠 또 들릴까 소리나기 기다려서 새도록 풍경소리 데리고 잠 못 이뤄 하노라 …

9 고향보다 더 먼 고향           02-20 운영자
고향보다 더 먼 고향 정 완 영 고향을 찾아가니 고향은 거기 없고 고향에서 돌아오니 고향은 거기 있고 흑염소 울음소리만 내가 몰고 왔네요 고향을 떠나 온지 반백년이 지났다. 마을 앞 신작로는 아스팔트 옷 을 입고 으스대며 내달리고 손잡고 줄을 섰던 초막들은 소식조차 끊어 진지 오래다. 마을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낯선 이 뿐이고 코흘 리개 친구들은 어디에 숨었는지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

8 이은상-고향생각---이근구 (국시조사랑시인…           09-24 운영자
다시 읽고 싶은 시조 - 이근구 고향 생각 이 은 상 어제 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하기 소식을 전차하고 갯가로 나갔더니 그 배는 멀리 떠나고 물만 출렁 거리오. 고개를 수그리니 모래 씻는 물결이요 배 뜬 곳 바라보니 구름만 뭉기뭉기 때 묻은 소매를 보니 고향 더욱 그립소. *1932에 수록 우리가 오래 전부터 흔히 쓰는 말로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란 말이 있다. 다시 읽고 싶은 시조로 돌…

7 봄, 새벼리/김정희--최오균           06-12 운영자
다시 읽고 싶은 시조 - 최오균 봄, 새벼리* 김 정 희 그 약속 잊지 않고 돌아온 화공들이 채색을 하느라고 붓놀림이 바쁘다 밤사이 그린 수채화 꽃대궐이 열두 채. 그 약속 지키느라 돌아온 악사들도 이 쪽 저 쪽 숲에서 고운 목청 견준다 냉천사 능수 벚꽃도 들썩이는 어깨춤. *새벼리 : 진주 8경중의 하나인 산의 이름. 지난 3월 마지막 토요일, 나는 전주시 교동에 위치한 고하문학관을 …

6 김영환의 작품세계           10-14 운영자
[김영환 시인의 작품세계] 1. 산가 창밖에 남새밭은 오이순이 돋아나고 푸른 산 머리위로 흰 구름 넘나든다 민박촌 오월의 아침 홰를 치는 닭 울음. 2. 고향길 …

5 최지형 시인의 작품세계           10-14 운영자
어젯밤 비가 와서 무슨 말을 했기에 오늘 아침 꽃들이 쓰러져서 울까요 -최지형 시인의 작품세계- 정경은(문학박사) 한 시인이 있다. 그녀는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오랫동안 머물렀으며 그곳을 사랑한다. 그녀는 산을 좋아하여 자주 오르며, 산에서 들리는 소리와 풀들의 수다에 귀를 기울인다. 길가에 핀 꽃이나 정원에 핀 꽃들과도 눈을 맞춘다. 산사에서 흘러나오는 승려들의 음성에도 귀를 열어둔다. 또한 추수 때와 저무는…

4 최언진           10-14 운영자
***길 최언진 길이 없다 울며불며 머리 싸맨 친구에게한 마디 못 건네고 등만 쓸고 돌아오다입속에물고 있던 말허공에다 쏱는다 어디를 내딛어도 그건 바로 길이여슬픔도 길이 되고 오기도 길이 되고길이란묘한 거여서온 세상이 길이여    ***촌부일기 벌레라고 잡초라고 악물고 제거하며 내 맘에 드는 곡식 가려가며 심었어. 서로들 영역 다툼에 피터지게 싸웠지. 편애…

3 단련된 감성과 질박한 수사[고두석 시인의 …           10-14 운영자
단련된 감성과 질박한 수사 ―고 두석 시인의 작품세계― 김 병 희 (문학박사) 1. 바야흐로 모든 것이 무르익는 계절이다. 따스하기만 하던 햇살이 어느덧 뒷덜미에서 뜨겁게 이글거리고, 새로 첫 장을 넘긴 도톰하던 달력도 여러 장 뜯겨나간 마당에, 신록이 무르익어 풍성한 초록은 우리의 눈자위를 싱그럽게 만든다. 시인들이 작품을 구상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언제쯤일까. 여름이란 계절이 사방에서 우리를 가만두지 않고 …

2 세상의 중심을 세우는 남다른 기준-김명호…           06-06 운영자
세상의 중심을 세우는 남다른 기준 -김명호 시인의 작품세계- 정경은(문학박사) 김명호 시인의 시조를 읽고 있다.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시란 무엇일까 그리고 이 시인에게 시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는다. 저마다 생긴 모습이 다르듯이 시인들마다 시의 모습이 다르고 시인들에게 갖는 시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김명호 시인에게 시란 세상을 향…

   김명호시인의 작품세계           10-14 운영자
새우젓 김명호 새우젓 풍겨드는 콧등 시린 살 냄새 젓 단지 머리 이고 종종걸음 시오리 일 년 내 보릿고개를 끌고 넘던 울 엄니. 샘통* 가을이 나간 자리 철새들 밀물인데 못다 푼 단 자리 셈이 지표를 뒤집어서 삼시(三時)를 잃은 나그네가 혼절을 넘나든다. 저 장관을 길러 오는 노상주차장을 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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