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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蓮)바람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6-09-19 15:24     조회 : 172    

다시 읽고 싶은 시조 - 정순량

연蓮과 바람

    정 완 영

옛날 우리 마을에서는 동구 밖에 연蓮밭 두고
너울너울 푸른 연잎을 바람결에 실어 두고
마치 그 눈부신 자손들 노니는 듯 지켜봤었다.

연蓮밭에 연잎이 실리면 연蓮이 들어왔다 하고
연蓮밭에 연蓮이 삭으면 연蓮이 떠나갔다 하며
세월도 인심의 영측盈仄도 연蓮밭으로 점쳤었다.

더러는 채반만하고 더러는 멍석만한
직지사 인경소리가 바람타고 날아와서
연蓮밭에 연잎이 되어 앉는 것도 나는 봤느니.

훗날 석굴암 대불이 가부좌하고 앉아
먼 수평 넘는 돛배나 이 저승의 삼생三生이나
동해 저 푸른 연잎을 접는 것도 나는 봤느니.

설사 진흙 바닥에 뿌리박고 산다 해도
우리들 얻은 백발도 연잎이라 생각하며
바람에 인경소리를 실어봄 즉 하잖은가.



  정완영 선생님의 ‘연과 바람’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먼저 어릴 적 친 구들과 어울려 여름철에 동구 밖 연 방죽 가장자리를 돌며 잠자리를 잡 던 일과 뜨거운 햇볕을 가리기 위해 큼지막한 연잎을 따서 머리를 가리 고 돌아다니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나는 요즘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 에 있는 덕진공원 연밭을 자주 찾습니다. 한참 만발한 연꽃을 둘러보며 한 바퀴 둘러보고 집에 돌아오면 1시간이 걸립니다. 아침 운동으론 더 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시간에는 각지 에서 찾아온 사진애호가들이 저마다 망원렌즈를 장착한 사진기로 작품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데 이런 풍경 또한 장관입니다. 부여 궁남지의 다 양한 연꽃도 볼만하지만 덕진 공원 연꽃은 사진작가들에게 매력 있는 장소입니다.
  비 내리는 날 연밭을 찾아가면 빗줄기가 연잎을 두들기는 자연의 교 향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 빗방울이 연잎에 모아졌다 흘러내리는 광경 또한 아름답습니다. 연밭을 꼬불꼬불 지나가는 나무다리 중간쯤에 있는 ‘연화정’에 앉아 귀로 듣고 눈으로 감상하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엔 방생한 빨간 점 외래종 거북이들 때문에 토종 물 고기 씨 말린다고 화제가 되더니, 요즘 연밭을 돌다보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기괴하고 우렁찬 황소개구리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이 역시 잡식성 외래종으로 생태계를 위협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우석대학교 대학원장으로 있을 때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전 문지식을 갖춘 명사를 초청하여 학부 학생들이 인생을 가꾸어 가는 과 정에서 새기고 실천해야할 귀한 말씀을 듣는 「명사초청강의」 교육과정 이 있었는데, 2003년 백수 정완영 선생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시와 생활의 함수관계」란 제목으로 2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강의하셨습니다. 특히 시의 역할을 “첫째 사람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시는 여유를 가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자기 자신을 타이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을 치유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강연 말 미에 중국의 한시, 일본의 하이꾸와 대비하면서 시조에 대하여도 언급 하였는데 “초장, 중장, 종장을 3장 6구라고 하는데 초장 절구가 7자예 요. 그런데 9자까지 가능해요. 이처럼 우리나라 시조는 자유자재에요. 그리고 다른 나라 시는 한번 흐르면 쭉 흘러가요. 그런데 시조는 굽이치 는 거예요. 굽이쳐서 다시 돌아와요. 종장 역시 마찬가지예요. 5자까지 되는데 7자까지 허용해서 쓴 거예요. 이것들을 봐서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더욱 너그러웠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위의 글에서 언급한 시의 역할을 곱씹어 보면 백수 선생님의 문학정 신을 엿볼 수 있고, 시조에 대하여 간단하게 얘기했지만 바로 백수 선생 님은 초창기부터 일관되게 시조의 본질에 엇나가지 않는 작품을 써오고 있으신 시조론을 알 수 있습니다.  ‘연과 바람’ 이 작품은 「시문학 」 1977년 6월호에 실린 걸 1984년  정완영 제7시조집  「蓮과 바람」으로 출판하였습니다. 여기 옮긴 작품은 2006년 6월 발행한 「정완영 시조전집」에서 띄워 쓰기와 오자를 바로잡 은 것입니다.  단시조 5수를 묶어 연작시조로 쓴 ‘연과 바람’을 읽고 또 읽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시어를 골라 썼는지, 그리고 한국인의 속 깊은 정서를 뽑아 올렸는지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연꽃을 주제 삼아 시를 쓰기 마련인데 이 작 품은 오직 연밭에 무성한 연잎을 주제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첫수에서 연잎이 바람에 펄럭이는 정경을 “너울너울 푸른 연잎을 바람결에 실어두고” 이 모습이 마치 자손들 즐겁게 노니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수에서 ‘찼다가 기운다’는 영측盈仄이란 좀 어려운 낱말이 나오는데 연밭의 성쇠를 빗대어 인생도 오르막이 있으 면 내리막이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셋째 수에는 연잎이 나 풀대는 모습을 보면서 직지사 지붕 모서리에 달린 인경이 바람결에 울 리는 맑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기막힌 발상입니다. 넷째 수에서는 저 멀리 석굴암 대불이 혜안과 불심으로 인생 파고를 넘는 게나 삼생은 물 론 역사의 흐름을 통찰하고 있다고 암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수에서 는 진흙 밭 같은 풍진세상에서 연잎이 피어나고 사그라지는 것 같은 나 그네 인생여정에서 바람에 인경소리 듣는 것처럼 초연하게 살아봄 직하 지 않겠는가 라며 여유로운 도인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정순량
·《대구매일신문》신춘문예 시조당선(1976),《시조문학》지 천료(1976) ·전북문학상, 백양촌문학상, 전라시조문학상 ·한남문인상 대상, 오늘의 좋은 작품집상 수상 ·시조집『향일화』외 10권, 산문집『빛되어 소금되어』외 1권 ·한국시조시인협회 자문위원, 우석대학교 명예교수(이학박사) ·전북 지도자홀리클럽 사무총장



시인의 작품세계, 다시 읽고 싶은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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